안도현(安度眩.1961.10.1∼ )
시인.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 당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당선, 데뷔.
1985년 이리중학교 교사, 1988년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결성에 참여,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가입으로 이리중학교에서 해직당함. 1994년 3월에 전북 장수 산서고등학교 복직.
1997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전북지회 결성에 참여. 1997년 2월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전주 근교인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에 정착. 2004년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부임. 제1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1996), 소월시문학상(1998), 원광문학상(2000), 노작문학상, 모악문학상 수상.
【시】<낙동강>(1981),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4)
【시집】<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첫시집), <모닥불>(1989.제2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제3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제4시집), <그리운 여우>(1997.제5시집), <바닷가 우체국>(1999.제6시집)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1999)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1999) <나 대신 꽃잎이 쓴 이 편지를>(1999)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2001) <바람난 살구꽃처럼>(2002) <사랑이 올 때>(2002) <천년 동안>(2003) <그대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2003)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2004) <시가 있는 월요일>(2004)
【어른을 위한 동화】<연어>(1996), <관계>(1998), <사진첩>(1998), <짜장면>(2000), <증기기관차 미카>(2001) <민들레처럼>(2003) <관계를 맺는다는 것>(2004)
【동화】<얼레꼴레 결혼한대요>(2002) <만복이는 왜 벌에 쏘였을까>(2002) <이 세상에서 제일 먼 곳>(2002) <만복이는 풀잎이다>(2002) <제비와 제트기>(2003)
【동화집】<풀잎 냄새 가득한 그림동화책>(전5권.2003)
【소설】<나비>(2004)
【산문집】<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1998) <안도현의 아침엽서>(2002) <사람>(2002) <100일 동안 쓴 러브레터>(2003)
【에세이】<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1998) <그리고 구멍가게가 생기기 전에는>(2000) <고양이는 어디서 명상하는가>(2003) <개는 어디서 꿈을 꾸는가>(2003) <안도현의 포토에세이>(2004)
【연보】
▶1961 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동 523번지 소망실의 '까치구멍집' 건넌방에서 아버지 안오성과 어머니 임홍교의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남.
▶1973 경북 안동 풍산국민학교를 다니다가 6학년 3월에 대구 아양국민학교로 전학을 감. 사촌형, 사촌누나와 자취 생활.
▶1974 가족들은 경기도 여주군으로 농사를 지으러 이주함. 대구 자취방에서 라면을 자주 끓여 먹었으며, 학교에서는 미술반 활동을 함.
▶1977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졸업. 교지 [무궁]에 투고한 시가 실리지 않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문예반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음. 대구 대건고등학교 문예반 [태동기문학동인회]에 가입하여 현재 문단에서 활동 중인 홍승우, 서정윤, 박덕규, 권태현, 하응백, 이정하, 김완준 등의 선후배들을 알게 됨. '학원문학상'을 비롯하여 전국의 각종 백일장과 문예 현상 공모에서 수십 차례 상을 받음. 부산의 이산하, 대전의 윤대녕 등도 이 무렵부터 사귀게 됨.
▶1980 대구 대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 국문과 입학. 대구에서 발간되던 통신문학지 [국시] 동인으로 박기영, 박상봉, 장정일 등과 함께 활동.
▶1981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 당선. 그 해 부친 작고.
▶1984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당선. 대학 시절 최정주, 최문수, 권강주, 정영길, 김영춘, 강태형, 김경은, 백학기, 이진영, 이요섭, 이정하 등 선후배들을 알게 됨. 이들과 [원광문학회]를 결성함.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뒤 경북 안동에서 육군 방위병 2개월 간 복무함. 박성란과 결혼, 딸 유경 태어남.
▶1985 2월에 이리중학교 국어 교사로 부임.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민음사) 출간. 김백겸, 고형렬, 양애경, 김경미, 고운기 등과 「시힘」 동인 활동 시작.
▶1988 이광웅, 정양, 김용택, 이병천, 박남준 등과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결성에 참여.
▶1989 두 번째 시집 <모닥불>(창작과비평사) 출간. 그 해 8월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이리중학교에서 해직. 그 이후 1994년 2월까지 전교조 이리익산지회에서 상근함. 김진경, 도종환, 배창환, 조재도, 정영상, 조성순, 조현설 등과 함께 [교육문예창작회] 활동.
▶1990 아들 민석 태어남.
▶1991 세 번째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푸른숲) 출간.
▶1994 3월에 전북 장수 산서고등학교로 복직. 네 번째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출간.
▶1996 제1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문학동네) 출간.
▶1997 2월에 교사직을 그만 두고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함. 다섯 번째 시집 <그리운 여우>(창작과비평사) 출간.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문학동네에서 재출간. 민족문학작가회의 전북지회 결성에 참여.
▶1998 제13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어른을 위한 동화 <관계>(문학동네), <사진첩>(거리문학제),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샘터) 출간. 9월에 전주 근교인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에 작업실을 마련함.
▶1999 여섯 번째 시집 <바닷가 우체국>(문학동네) 출간. 애송시집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나무생각) 엮음.
▶2000 어른을 위한 동화 <짜장면>(열림원) 출간. 어른을 위한 동화 <사진첩>을 이룸에서 재출간. 고려대 문예창작과, 이화여대 국문과에서 강의. 원광문학상 수상.
▶2001 어른을 위한 동화 <증기기관차 미카>(문학동네) 출간.
【안도현 그는 누구인가】
원래는 돋보이는 민중시인이었지만, 이제는 잔잔한 서정시인이자 '어른들을 위한 동화' 작가로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맑은 물에 물감을 개어 수채화를 그리면서 화가를 꿈꿨다. 집안에 책이라곤 아버지가 읽다 만 <재클린과 오나시스>가 전부였으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탐독한 책이라곤 만화가게에서 본 무협지와 <철인 28호>, 그리고 몇 권의 소설뿐이었다.
그러나 고교 입학을 앞두고 놀러 간 친구집에 가지런히 꽂힌 삼중당 문고를 접하면서,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 웬만한 한국 단편을 모조리 섭렵하면서 안도현은 문학소년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고등학교 문단을 휩쓸며 '고교 최고의 시인'으로 군림하다 이리 원광대학에 문예장학생으로 진학했다. 1980년의 일이다.
그 해 5월, 계엄령이 떨어지고 광주에서 흉흉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수업을 안 하니 신난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착검한 채 학교에 진주(進走)해 있던 계엄군에게 걸렸다. '때가 어느 때인데 술이나 쳐 마시고 있느냐'는 소리와 함께, 교문 앞에 꿇어 앉혀진 채 개 패듯 맞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맞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학이라는 것이 골방에 앉아 혼자 끙끙댄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지금, 이곳'에서의 시를 쓰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런저런 곡절 끝에 태어난 그의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80년대 민중시의 걸작편으로 꼽힌다.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꿈꾸던 그의 문제의식은 졸업 후 '인간교육'을 내건 전교조 활동으로, 그리고 해직으로 이어졌다. '전투경찰에 둘러싸여 투쟁에 목청 높이던 거리의 교사'가 되어, 학교 현장의 모순과 부딪히며 쓴 이 시기의 시편들 역시 민중시ㆍ민족시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해직 교사 시절을 마감하고 돌아간 교단은 전북 장수군 산서면 산서고등학교. 일종의 유배지처럼 산골로 배치 받았던 것이지만, 그곳에서 시인은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새롭게 깨우치는 체험을 했다. 산과 들, 개울과 나무, 잠자리와 버들치, 애기똥풀 따위와 만나고, 호박씨를 심은 후 몇 날 며칠씩 싹이 돋기를 기다리던 그 시절에 그는 마침내 '내가 세계의 중심임을' 깨닫는다.
더불어 그의 문학세계도 새로워졌다. 서정시인으로의 변신과 함께,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같은 책들에서 힌트를 얻어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썼다. 독자들은 그의 새로운 작품들을 사랑해 주었고, 안도현은 '연어 판 돈'(인세)으로 여유를 가지면서 정든 교단을 떠나 전업작가의 길로 나섰다.
그의 글에는 맑고 은은한 울림과 더불어 인생과 세상을 대하는 날카로우면서도 참으로 여유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낮은 목소리로 세상의 아름다움과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진실을 조근조근 얘기해 줄 때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안도현에 푹 빠진 독자라면, 어제의 안도현에도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 어떠한 정신적 고투의 과정을 거쳐 오늘의 넉넉한 글들을 쓰게 되었는지 이해한다면, 안도현의 글발들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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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작품세계> - 구모룡: <문학사상사>(1998년 5월호)
“생명의 그물과 같은 시. 그의 시적 성취는 자신의 세계관을 주장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며 그 세계관을 몸소 시로써 사는 데서 온다.”
▶안도현 시가 보여 주는 생명에 대한 천진난만함
안도현의 시를 말하기 위해 프리초프 카프라를 빌었다.
‘생명의 그물’.
이 말 속에 안도현이 추구하는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새로운 관계’의 탐구에 몰두하고 있다. 즉 생명의 원리에 의해 상호 연결되는 관계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궁극적으로 생태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의 내적 원리가 된다.
생명 과정들 상호간의 의존성은 생태적 관계의 본질이다. 그런데 인간과 자연을 생명의 그물로 이해하는 것은 굳이 카프라를 빌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전통적 사유가 이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를 무차별적으로 파편화시키는 근대에 대한 환멸의 경험은 우리에게 이러한 전통으로 세계를 재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이제 전통은 근대에 대한 단순한 반립(反立)이 아닌 대안(代案)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재문맥화하고 관계들을 재구성하는 일이 당위의 하나가 되었다. 이는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적 공장’에서 ‘새로운 자유의 공간’을 만다는 일과 유관한데, 시인이야말로 이러한 일에 가장 오래된 희망이 아닌가 한다. 안도현의 시가 보여 주는 생명에 대한 ‘천진난만’의 감각은 근대라는 거대한 무덤에서 새싹이 움트는 것처럼 느껴진다.
[남대천 상류 물푸레나무 속에는
연에떼가 나무를 타고
철버덩거리며 거슬러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무가 세차게 흔들리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물푸레나무 가지 끝에 알을 낳으려고
연어는 알을 낳은 뒤에 죽으려고
죽은 뒤에는 이듬해 봄 물푸레나무 가지 끝에
수천 개 연초록 이파리의 눈을 매달려고
연어는 떼지어 나무를 타고 오른다
나뭇가지가 강줄기를 빼 닮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강과 연어와 물푸레나무의 관계> 전문-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명의 상호의존적인 관계이다. ‘강과 연어와 물푸레나무’들은 생명의 그물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개별의 대상으로 그려질 수 없으며 생명의 과정을 함께한다. 즉 서로 제유적인 관계를 갖는다. 제유(synecdoche)가 내적 연관성에 바탕한 인식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케네스 버크나 헤이든 화이트에 의하면 제유의 사유는 유기론(organology)으로 나타난다. 유기론은 개별성과 전일성의 상관관계라는 패러다임을 지니며 모든 존재가 유기적으로 연속되어 있다는 것을 원리로 삼는다. 안도현은 이 시를 통해 제유적 사유와 유기적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는바, 이는 개인주의 혹은 주체 중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근대의 왜곡된 관계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 된다.
우리에게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는 ‘대대(對待)’라는 말은 유기적 관계를 나타내는 데 적합하다. 이 말은 모든 것은 타자를 향해 마주서 있으나 그 또한 타자를 기다려서 비로소 존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관계가 생명의 그물에 다름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서구의 개인주의와 기계론적 세계관에 의해 공동체가 파괴되는 근대를 경험하였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동아시아적인 생명적 세계관을 재구성하는 일은 매우 시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안도현의 시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시사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관계를 생명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시인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는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고래를 기다리며> 전문-
이 시는 시인의 뛰어난 직관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직관의 배후에 제유적인 인식이 놓여 있음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이 시에서 ‘바다’는 ‘화엄(華嚴)’과 다를 바 없다. ‘전체가 하나 속으로 들어와 있고, 하나가 전체 속으로 투영되어 있다’는 ‘화엄’은 ‘바다’와 ‘고래’의 관계로 유비(類比)된다. ‘오지 않는 고래’를, ‘보이지 않는 고래’를 ‘바다’를 통해 본다는 것은 상상의 비약으로 처리될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생명의 내적 연관성에 관한 인식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생명은 단순한 살아 있음이 아니라 타자와의 교류를 통하여 존재하는 것, 만물의 상호 교류성을 표현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바다’는 이미 ‘고래’를 포함하고 있으며 ‘고래’ 또한 ‘바다’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안도현은 삶을 분자화된 개별로 보지 않는다. 그는 한 개체뿐만 아니라 개체와 개체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전제한다. 모든 관계를 생명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동아시아적 사유를 잘 모르는 케네스 버크조차 ‘고상한 제유’라고 한 바 있다. 이는 가장 이상적인 제유로서 소우주와 대우주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근대 모방은 우리 속에 내재한 ‘고상한’ 전통을 망각한다. 안도현의 시는 이러한 망각으로부터 우리를 일깨운다.
[점심 먹을 때였네
누가 내 옆에 슬쩍, 와서 앉았네
할미꽃이었네
내가 내려다보니까
일제히 고개를 수그리네
나한테 말 한 번 걸어 보려 했다네
나, 햇볕 아래 앉아서 김밥을 씹었네
햇볕한테 들킨 게 무안해서
단무지도 우걱우걱 씹었네.]
-<봄 소풍> 전문-
어떻게 보면 천진한 아이의 심상조차 느껴지는 시이다. 자연을 의인화한 것도 그렇고 시적 화자의 태도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천진함은 아이의 심상이라기보다 자연에 대한 겸손에서 유래한다. 또한 할미꽃과 햇빛과 인간이 자연이라는 하나의 문맥 속에 있다는 인식과도 관련된다. 다시 말해서 이 시는 공진화(共進化)의 가치를 새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의인관(擬人觀)의 기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자연을 타자화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근대적 관점을 내포하기 이전에 의인관은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의미하는 방식이었다. 안도현이 의인법을 자주 시쓰기에 활용하는 것도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이라는 문맥과 관련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의인법은 주체철학에 기초하여 자연을 인간에 동화시키는 여타의 의인법과 구분된다. 오히려 그는 이것을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를 드러내고 대등한 타자들로서 자연과 인간이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는 점을 보이기 위한 수사학적 장치로 사용한다.
▶보잘것없는 것과의 대화에서 발견하는 삶의 의미
[모과나무는 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다
빗물이 어깨를 적시고 팔뚝을 적시고 아랫도리까지
번들거리며 흘러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비를 맞는다, 모과나무
저놈이 도대체 왜 저러나?
갈아입을 팬티도 없는 것이 무얼 믿고 저러나?
나는 처마 밑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모과나무, 그가 가늘디가는 가지 끝으로
푸른 모과 몇 개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끝까지, 바로 그것, 그 푸른 것만 아니었다면
그도 벌써 처마 밑으로 뛰어들어왔을 것이다.]
-<모과나무> 전문-
이 시는 발상에서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 시를 통하여 박덕규가 말한 ‘아이처럼 밝아지는 얼굴’과 대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천진난만함의 감각이 지니는 의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유년을 잊고 사는 것처럼 자연을 잃고 산다는 것을 깨우치는 효과가 아닌가 한다.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언술의 천진성이 우리를 정화(淨化)하는 효력을 지녔음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발견의 화법으로 이어져 인간중심의 인식을 해체하기도 한다. 결구(結句)가 그러한바, 이는 아이의 천진한 눈이 더 많은 생명의 활력을 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만큼 근대는 늙은 어른의 세계라는 것이다. 물론 근대 그 자체는 끊임없는 변화를 갈구하는 청년의 세계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 청년의 패기가 인류의 재앙이 되고 있음을 안다. 안정을 모르는 청년으로서의 근대는 그러나 덧없음을 남긴다. 모든 것은 신속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유기적인 자연은 항상적인 생명력을 지닌다. 이는 처마 밑으로 뛰어들지 않는 <모과나무>로 비유되고 있다.
자연은 위계를 갖지 않는다. 위계를 만드는 것은 인간일 뿐, 자연은 그 모두가 저절로 자기 발생하는 하나의 생명의 과정에서 참여자로 상호작용한다. 유기적 세계관은 처음부터 평등의 관계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안도현이 작고 보잘것없는 것과의 대화에서 삶의 많은 의미들을 발견하는 것은 이러한 유기적 세계관과 관련된다.
[그런데 눈은 왜 저렇게 크나?
저 눈으로 바닷속을 다 둘러보았다면
지금, 나 같은 것
眼中에도 없으리]
-<제주 자리젓> 중에서-
‘제주 자리젓’을 먹으며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데서 우리는 안도현의 시적 개성을 매우 직절(直截)하게 만난다. 특유의 순진한 시선과 그 속에 깃들여 있는 의미의 심장(深長)이 함께 읽혀진다. 물론 이러한 개성의 이면에 제유의 사유와 유기적 세계관이 놓여 있음을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사유와 세계관이 아니라 그가 보이는 구체적인 시적 담론이다. 그의 시적 성취는 자신의 세계관을 주장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며 그 세계관을 몸소 시로써 사는 데서 온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우리 삶을 새로운 관계로 재구성하는 데 실천적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생태적 공동체에 대한 그의 희망과 갈구는 비록 지금은 난폭하게 질주하는 근대의 소음 속에 묻힌다 하더라도 언젠가 하나의 대안적 흐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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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론-삶과 역사 사이에 놓인 길>
- 방민호(문학평론가): [시와 시학](1996년 봄호 통권 21호)
▶김남주를 생각한다. 비록 그의 시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사상의 거처를 힘겹게 묻다가 예기찮은 시대 앞에서 차라리 죽음을 택한 그는 참으로 시인이었다. 갇혀 있던 방을 나와 세상의 빛을 비로소 보았건만, 그것은 얼마나 불순한 것이었던가. 그리하여 나는 <나의 칼 나의 피>가 주는 촌철살인의 미학을 좋아하지만 <사상의 거처>를, <솔직히 말하자>를 더욱 사랑한다. 거기엔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이라는 우울한 바다에서 난파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선원의 절실함이 있다. 비록 자신의 이야기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그리하여 이미 낡아버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자신의 운명이기에 그는 그 이야기들을 버릴 수 없다. 버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는 불치의 병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을 빠르게 썩게 함으로써 자신의 시의 운명과 삶의 운명을 같은 길 위에 놓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 김남주는 어쩌면 속된 말로 행복한 시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또 생각한다. 불행한 시인 둘을. 김정환과 황지우. 같은 길에서 시작한 그 둘이 지금 그렇게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들의 불행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은 지울 수 없는 노래가 얼마나 무서운 함정을 숨기고 있는지를 모른 채, 자신의 열정에 충실한 길을 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 열정이 과학에 대한 열망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이윽고 <기차에 대하여>를 쓸 때쯤 해서는, 그는 이미 노래가 더 이상 노래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그것은 지나친 믿음이 준 뜻하지 않은 결과였고, 또 천성적으로 낙관의 시인인 그는 그러한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의 나이를 세며 노래로의 복귀를 꿈꾸지만, 그러나 나는 자신할 수 없다.
그의 시의 위기가 빠른 시간 내에 끝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머지 한 사람은 언제나 열정에 앞서, 열정의 밑에, 허무를 지니고 있었다. 그 또한 해방을 꿈꾸지 않은 건 아니었으되, 나는 곧 너라며, 우리의 담론을 펼치려 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되, 이미 그 때부터 그는 허무적이었고, 그의 다변과 변화무쌍함은 허무 위에 피어난 아름다운 잡초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을 속세로 보지 않을 수 없었고, 속세의 환란에 기 질리지 않을 수 없었고, 속세가 아닌 곳, 즉 자신의 태가 묻혀 있는 솔섬이나, 해탈의 세계인 화엄으로,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는 침묵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란, 다변이어서도, 침묵이어서도, 안 되는 것. 성스러우면서도 속된 것. 그러므로 그의 시는 지금 더 깊고 더 아름답지만, 그의 시가 나아갈 곳이 더 있는지를 확신할 수 없다. 그의 시는 예전에도 지금도, 김정환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제 비로소 안도현을 생각한다. 이제 막 불행해질지도 모르는, 나의, 그래도 같은 세대에 속하는 한 진실한 시인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그는 불행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조금 더 짙게 불길한 예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지난 해 여름 그는 “내 시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던, 그래서 나를 누르던 엄숙함을 좀 덜어내야겠다.”(「문학사상」 94년. 6, 81쪽)고 말한 적이 있다. 확실히 그의 시에는 엄숙함이 있었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바라볼 때,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의 여인을 사랑할 때, 마지막으로, 북에 남아버린 너무나 빼어났던 한 시인을 그리워할 때, 그 때마다 그는 엄숙했다. 경건했다. 무거움 없이 그는 시를 쓸 수 없었다.
그러했던 그가 “어느 날 땅바닥에 떨어진 새털 하나를 보고” “가벼움에도 진지함이 깃들어 있음”(같은 곳)을 깨닫고, 그리하여 좀더 가벼운 시를 쓰고 싶어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마음의 행로에 따른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세상을 좀더 깊숙히 들여다보겠다고 마음먹”(<나와 잠자리와의 갈등 2>)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역설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난 그런, 전환을 꿈꾸는 그가 염려스럽다. 내게는 그의 최근의 전환이, 그의 내부로부터의 신비스러운 열정에 의해 안출된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위기 때문에, 즉 무거움의 버거움 때문에 이루어진, 강요된 선택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와 잠자리와의 갈등 1>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다른 곳은 다 놔두고
굳이 수숫대 끝에
그 아슬아슬한 곳에 내려앉는 이유가 뭐냐?
내가 이렇게 따지듯이 물으면
잠자리가 나에게 되묻는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이제서야, 그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묻는다. 김남주가 죽고, 김정환과 황지우가 시대를 감당하려다, 어느 의미로든 지쳐버렸을 때도, 그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을 꿈꾸었었다. 그들보다 한참 후배인 그는, “시에다 삶을 밀착시키고 삶에다 시를 밀착시”(<외롭고 높고 쓸쓸한>自序)킴으로써 비록 아주 새롭지는 않은 방식일망정, 90년을 전후로 한 시대적 격변에 맞서려 하였다.
<그대에게 가고 싶다>(91. 2. 이하 <그대에게>)와 <외롭고 높고 쓸쓸한>(94. 2. 이하 <외롭고>).
이 두 시집은 우회적인가 정공적인가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시대의 변화를 추인하지 않으려는 그 나름의 고투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이제서야 스스로에게 “너는 어디에 서 있느냐!”고 묻는 것을 나는 본다. 그리고는 보다 짧지만 보다 이완된 시들을 쓰는 것을 본다. 그 이완됨은 물론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작은 물상들에 시선을 고정시킴으로써 “보이지 않던 것들”을 “다시”(<나와 잠자리와의 갈등2>)보려고 하는 새로운 의지의 산물이자 새로운 응전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그가 화암사를 찾아가는 걸(<화암사, 내 사랑> <화암사, 깨끗한 개 두 마리>)보면서, 나는 왠지 그러한 그가, 자기 시의 배양지이자, 그 시의 전부인 삶으로부터,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삶의 공간으로부터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느낌은 다시, 그가, 갈 수도 있지만, 가서도 뭔가 얻을 수 있지만, 가지 않으면 더 좋을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타당한 느낌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그의 시의 본질이 무엇이며, 지금까지의 그의 시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등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안도현의 시세계를 조명하는 데 있어 매우 실효성 있는 한 방법은 그와 백석의 시를 비교 혹은 대조하는 것이다. 이는 그의 두번째 시집이 <모닥불>(89.5)이며, 세번째 시집이 <외롭고>라는 것만 보아도 분명해진다. <모닥불>에서 백석의 <모닥불>을,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연상하기란 매운 쉬운 일이며, 안도현 자신 그러한 백석의 영향을 숨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석 선생의 마을에 가서>는 그가 백석을 모방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따르고자 한 것임을, 진정 사랑 때문에 그의 시풍을 계승하려 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가 “백석의 시적 호흡과 창작 원리를 성공적으로 계승하고 있”(<분단 시대의 꿈과 정치적 신화>[창작과비평], 89년 가을호, 75쪽)다고 파악한 백석 연구자 이동순의 지적에 나는 많이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안도현은 “백석 시의 의미와 활용 방법 및 그 가치”(76쪽)에 주목하면서 그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한 것이 사실이다. 이 점에서 그의 몇몇 시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가치를 지니며, 그에 대해서는 이동순 외에도 김헌선에 의해 간명하지만 정확하게 파악된 바 있다(<전통시학의 지속과 변화>[문학정신], 89년. 9). 그는 그 글에서 안도현과 백석의 두 <모닥불>이 갖는 기법상의 공통점을 “엮음의 수법”(376쪽)으로 정리하고 있다.
“백석의 작품에서는 어휘를 나열하고, 안도현의 작품에서는 시행의 나열이라는 차이점이 있으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엮음의 기법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정도로 두드러진다”(376쪽)
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러한 공통점이 안도현 시학의 본질을 깨뜨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면 그가 생각하는 안도현 시학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단 “투명하고 소망스런 삶에 대한 정향”(같은 곳)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겨레 의식”(같은 곳)의 존재로 보충된다. 그러나 한정된 지면 탓인지 그는 여기서 더 이상 논의를 진전시키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안도현 시학의 본질은 아직 분명치 못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역시 두 <모닥불>의 비교 검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①모닥불은 피어오른다/어두운 청과시장 귀퉁이에서/지하도 공사장 입구에서/잡것들이 몸 푼 세상 쓰레기장에서/철야농성한 여공들 가슴 속에서/첫차를 기다리는 면사무소 앞에서/가난한 양말에 구멍 난 아이 앞에서/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에서/사람들이 착하게 살아 있는 곳에서/모여 있는 곳에서/모 닥불은 피어오른다/얼음장이 강물 위에 눕는 섣달에/낮도 밤도 아닌 푸른 새벽에/동트기 십분 전에/ 쌀밥에 더운 국 말아 먹기 전에/무장 독립군들 출정가 부르기 전에/압록강 건너기 전에/배 부른 그 들 잠들어 있는 시간에/쓸데없는 책들이 다 쌓인 다음에/모닥불은 피어오른다/언 땅바닥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훅훅 입김을 하늘에 불어넣는/죽음도 그리하여 삶으로 돌이키는/삶을 희망으로 전진시 키는/그날까지 끝까지 울음을 참아내는/모닥불은 피어오른다/한 그루 향나무 같다
-안도현: <모닥불> 전문-
②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모가지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재당도 초시도 門長늙은이도 더부살 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 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 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백석: <모닥불> 전문-
먼저 백석의 <모닥불>을 보자. 이 시는 이동순의 분석이 보여주듯(<민족시인 백석의 주체적 시정신>:「백석시전집」), 백석의 합일의 정신이 가장 성공적으로, 밀도 있게 드러난 시다(168~171). 나는 이 시를 볼 때마다 작은 유리조각들이 합쳐져 한 폭의 소중한 성화(聖畵)를 이루는 모자이크의 위대함을 느낀다. 이 시에서는 어떤 하찮은 존재도 소외되지 않는다. 이들은 각각이 모두 본질이며 본질의 표현이다. 여기서 본질이란 물론, 일제 혹은 근대에 의해 훼손되기 이전 농촌공동체라는, 원환적 세계다.
이 시에 나오는 모든 물상들은 이 원환적 세계의 형성에 똑같이 참여하며(1연), 그 소박하면서도 성스러운 빛, 모닥불빛을 똑같이 나누어 받는다(2연).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3연이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픔 사연이 있다”는 이 이해하기 힘든 표현에서 모닥불 속에 녹아 있는 슬픈 역사, 슬픈 역사를 통해 빛나는 모닥불을 보게 되었을 때, 오직 신비스러운 직관의 도움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빛과 어둠의 융합을 깨달았을 때, 이론적 담론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강렬한 생명력과 저항력을 느꼈을 때, 그 순간은 곧 시가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함에 직면하는 순간이었다. 백석의 <모닥불>은 매우 긴장되면서도 완성도 높은 시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도현의 <모닥불>은 어떠한가. 그의 <모닥불>은 백석의 <모닥불>의 패로디다. 패로디는 정전을 필요로 하고 그것과의 동일성 속에서 차이를 지향하는 것이며, 이 차이의 깊이와 공교로움에 의해 작가의 개성의, 예술혼의 위대성을 입증해야 하는 까다로운 형상화 방식이다. 안도현은 이 힘겨운 작업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모닥불>을 백석의 <모닥불>처럼 3단 구성을 취하도록 하되, 연 구분을 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내적 구성상의 차이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형식적 차이 속에서 그는 모닥불의 의미의 차이를 또한 시도한다. 백석의 <모닥불>이 슬픔을 빛으로 전화시키는 민족적 생명력에 천착한 것이라면 그는 보다 민중 지향적이고 보다 저항적인 힘의 형상화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그는 백석의 모닥불이 지니는 원환적 생명력을 현대적으로 재생시키면서도 더 새로운 의미를 보태고자 한다. 이 점에서 그의 시도는 일단, 그 성패 여부에 관계없이 매우 중요한, 가치 있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닥불>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단 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안도현 시학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 있어 상당한 역할을 한다.
우선 그의 <모닥불>은 백석의 그것이 지닌, 운율적 긴장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그가 백석과는 달리 시행의 반복 형식을 취하고 있음으로 해서 빚어진 현상만은 아니다. 그것은 백석의 전혀 다른 형태의 시들, 예를 들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및 <흰 바람벽이 있어> 등과 같은 긴 시들이 갖는 변함없는 긴장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단순히 재능의 문제로 몰아갈 수는 없다.
그의 <모닥불>의 운율적 이완은 오히려 그의 시적 본성이 백석의 그것과는 다른 것임을 시사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점에 착안해 보면 그와 백석과의 보다 많은 차이가 드러난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의 관심이 항상 현재, 혹은 현재화된 과거에 있다면 백석의 관심은 대체로 과거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백석은 사라져 가는 것들 속에서 빛을 보는데 반해 안도현은 다가오고 있는 것들 속에서 빛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또한 두 시인의 커다란 개인사적 삶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인 듯도 하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경기도 여주에서 자라고 원광대학교를 다닌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향을 지니지 못한 시인이다. 이 점에서 그는 도꾜의 아오야마 학원으로 유학가기 전에는 평안도를 벗어나 보지 않았던 백석과는 근저에서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백석 시의 영원한 주제가 고향일 수 있다면 그의 시의 주제가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고향이 없는 자에겐 살아가는 것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모닥불>이 보여주는 긴장의 이완은, 백석 시에 대한 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또 그러한 사랑이 낳은 몇몇 성공에도 불구하고(<집>, <그리운 이리중학교> 등), 그의 시적 본성이 백석의 시풍을 부담스러워함을 보여준다. 그는 백석의 시가 지니고 있는 원환적 상징성과는 거리가 먼 시인인 것이다.
다음으로 안도현의 <모닥불>은 백석의 <모닥불>이 보여주는, 파편적인 것들, 하찮은 것들, 평범한 것들이 빚어내는, 이질적이면서도 평등한 질서에 미치지 못한다.
먼저 3단 구성의 1단. 여기서 안도현은 모닥불이 청과시장 귀퉁이, 지하도 공사장 입구, 쓰레기장, 여공들 가슴속, 새벽의 면사무소 앞, 가난한 아이의 앞 등과 같은 구체적인 곳에서 피어오른다고 하다가 ‘갑자기’ “비탈진 역사의 텃밭가”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가는 곳”과 같은 추상적인 공간 개념으로 상승해 버린다. 이같은 상승은 백석의 시에서는 2연과 3연의 사이에서만, 그것도 신선한 이미지 병치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2단. 그는 모닥불이 섣달에, 푸른 새벽에, 동트기 십 분전에, 쌀밥에 더운 국 말아 먹기 전에 피어오른다고 하다, 역시 “무장 독립군들 출정가 부르기 전에” “압록강 건너기 전에”와 같은 역사적 시간 개념으로 비약해 버린다. 더구나 여기서는 “배부른 그들” “쓸데없는 책들”과 같은, 앞의 시어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이질적인 시어들을 도입하는데, 이는 백석의 시어들이 매우 상이하면서도 동시에 동질적인 시어들을 사용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마지막 단계. 여기서 그는 모닥불이 갖는 현재적 의미, 현재적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다섯 행이라는 소모적인 설명과 마지막 행의 부적절한 사족을 통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며, 이는 백석의 <모닥불>이 3연에서 보여주는 충격적 효과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점들을 통해 볼 때, 안도현의 <모닥불>은 구체적 물상들 속에, 그들의 연관 속에 곧바로 생명력이 숨쉬고 있는 백석의 <모닥불>에 비해 훨씬 설명적이고 교술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그러한 단점이 시사해 주는 것은 안도현의 시적 본성이 백석의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라는 점이라고 본다.
이 점에서 더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의 <모닥불>이 구체적인 것들과 추상적인 것들 사이의 부조화를, 또는 구체적인 것들에서 추상적인 것들로의 비약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때 그 구체적인 것들이란 곧 체험적인 삶이며 추상적인 것들이란 민중주의적 역사 인식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도현의 시들은 이 양자 사이에서 혹은 삶 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혹은 역사 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모닥불>이 시사하는 듯 이 양자는 아직 진정으로 통합되거나 합일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통합 및 합일을 지향하는 것, 이것이 안도현의 시가 갖는 청년성이다. 아직 무엇인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도달하려 한다는 것, 이것이 그의 시의 진정성인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처해 있는 안도현이 백석의 시학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백석의 시들에서는 추상적인 것이 구체적인 것들 속에 완전히 통합되고, 그 속에서 빛을 발한다. 이것이 백석의 직관적 초월이며 백석 시의 상징성이다. 이에 반해 안도현은 어느 한 쪽을 다른 한 쪽에 완전히 통합시키지도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양자 사이의 긴장을 팽팽히 유지하는데도 힘들어하고 있다. 이 점이 안도현 시의 단점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긴장을 유지하고자 한다는 점이야말로 안도현 시가 선사하는 상당한 감동의 원천이다.
▶안도현 시의 본령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85. 10 이하 <서울로>)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시집은 <외롭고>에까지 이어지는 청년성을 가장 명확한 형태로 보여주며, 따라서 그의 문학적 기원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이 때, 황지우에게 있어 <연혁>이 중요하듯, 그에게 있어서는 그의 두 등단작 <낙동강>(81)과 <서울로 가는 전봉준>(84)이 매우 중요하다. 낙동강은 안도현 시의 출발점이 江임을 보여준다. 이 강은, 흐른다는 강의 이미지는 그가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곳(<流民> <歸> <旅譜> <다시 洛東江>, <금강 하구에서>, <만경강 노을>, <성묘>, <노을>, <그대에게 가는 길>, <강>, <홍수> 등)이며 따라서 그의 시의 기원이자 원천이다. 그 강이 놓인 자리에 시선이 가면 들판이 되고(<만경 평야의 먼 불빛들>, <먼 불빛> 등), 강에 도달하기 위한 의지가 강화되면 길이 되며(<길>, <백두산 가는길>, <벽시 6>, <길>,<나그네>, <그대에게 가는 길>, <모항으로 가는 길>, <튀밥에 대하여>, <학교로 가는 길>등), 강이 도달한 곳에 이르면 바다가 된다(<22시 바다>, <군산 앞바다>).
그러므로 안도현의 시는 들판에 서서 바다로 흘러가는 강에 도달하기 위해 길을 내는 시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안도현 자신의 삶이자,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삶이며, 자신의 딸 유경이가 살아가야 할 삶이다. 그것은 방황과 고통 속에서도 이어왔고 이어가야 할 지난한 삶이며, 이 점에서 그의 삶은 이미 그들의 삶 속에 귀속된 삶이다.
“江은/눈 앞에서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내 이마 위로도 소리 없이 흐르는 것”(<낙동강>)이 되는 것이다. <성묘>는 이를 잘 보여준다.
[햇볕도 대추나무 끝에 좋은 날
어린 유경이를 데리고
아버지 산소 성묘 갔지요
억새꽃 삼천리로 피어 있고요
방아깨비는 슬픔처럼 툭툭 튀어오르고요
할아버지 만나러 간다는
내 어릴 적 가을 한때 생각하면
아버지 발자국 되밟으며 가만히 듣던
그 벅찬 숨소리 생각하면
오늘 유경이도 따라오며 듣겠구나
생각하면 어느덧 나는
시냇물 데리고 바다로 가는 강물이지요
모든 길이 무덤에 이르러 깊어지지요.]
이 시만큼 삶에 대한 안도현의 실감이 정잘하면서도 정확하게 표현된 시는 없다. 왜 그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을 그토록 빈번히 회상하는 것인가. 그것은 그의 삶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에 귀속된 것이며, 자신이 지금 그들의 애환을 현재 속에서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명확해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사랑이 근본적으로 가족애에 속하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에게는 개인주의적 의미에서의 나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를 통해서만 나를, 우리 속에서만 나를 비로소 생각할 수 있는 시인이며, 그 때의 우리란 근본적으로 가족으로서의 우리이다. 그의 시에서의 민중 혹은 민족 또한 이 가족의 확대 개념으로서의 우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그의 이른바 교육시와 연애시를 통해서 공히 확인된다. 각각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교사로서 그의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육친적 사랑이며, 그가 느끼는 아이들에 대한 죄의식은 아버지의 죄의식이다(<교실에서> <운동장에서>). <그대에게> 전체를 통해 나타나는 그의 새로운 여인에의 사랑 또한 근본적으로는 가족애적인 사랑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사랑>을 보자.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 짓는 일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나로 하여 그이가 눈물짓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두려움으로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하소서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
소금처럼 하얗게 남게 하소서.]
이런 식의 사랑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사랑이다(<마지막 편지>). 사랑하면서도 아내에게 죄 지을 수 없고, 연인을 눈물짓게 할 수 없고, 자기 가슴 쥐어뜯을 수 없다면 헤어짐 외에는 아무런 방도가 없다. 물론 이것은 그의 새로운 사랑이 가짜라는 말이 아니다. 아무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랑, 그것은 가족애적, 육친적 희생 위에 바탕한 것이 아닐까.
이제 그의 또 다른 등단작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 눈 돌릴 필요가 있다. 이 시 바로 옆에는 <만경 평야의 먼 불빛들>, <오랑캐꽃 피기 사흘 전에>, <한국개항사(韓國開港史)>, <봉선화> 등이 있고, 이러한 경향이 80년대 중반을 전후로 한 민중문학론의 파고를 타면서 보다 목소리가 높아지면 <벽시> 연작들이 되고, 보다 관념화되면 <청진여자>나 <白石 선생의 마을에 가서> 및 <젊은 북한 시인에게>연작들이 되며, 그 영향이 일련의 전교조 해직 경험과 결합되면 <외롭고> 뒷부분에 게재되어 있는 투쟁적이고, 때로는 분노에 찬 시들이 된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초기 시에 속하는 <서울로 가는 전봉준>과 그 바로 옆의 시들이다. 특히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서는 시적 대상이 역사라는, 한층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으로 옮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낙동강>류의 시들에서 볼 수 있는 안도현의 시적 기원이 숨쉬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다음은 이 시의 4연 부분이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 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 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지금도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 갈 것을]
이 대목의 훌륭함은 단순히 민중주의적 낙관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그의 시의 원천인 강의, 그의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의 삶의, 해원을 희구하는 이 대목이 발산하는 눈부신 이미지 때문이다. 이 때 그 눈부심 이미지 때문이다. 이 때 그 눈부심은 또한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헤치고”하는 표현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다른 많은 시들이 보여주는 강의 이미지, 즉 신산스러움과 슬픔의 이미지를 이 대목이 ‘홀연’ 극복하는 데에서 더 많이 존재한다. 여기서 그는 역사를, 전봉준을 생각함으로써, 지난한 삶, 자신과도 같고,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와도 같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희망으로 끌어올릴 신비한 힘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는 그의 역사의식이 그의 경험적 삶의 진실과 결합되었을 때, 어떤 수준 높은 시적 고양 상태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의 시만이 가질 수 있는 중요한 가능성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시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아야 할 시가 있다. 그것은 같은 <서울로>에 들어 있는 <만경평야의 먼 불빛들>이다.
[우리의 몸 바깥이 아니라
몸 속에 어둠이 있다
그 어둠을 죽이려고 피어난 게 아니라
스스로 勇斷을 내려 물러가기를 바라면서
집집마다 이마에 하나씩 밑띵빝을 다는
萬頃江 유역에 나가 보라
정겨운 싸움이 있다
영차 영차
안간힘 쓰고 줄다리기하는 먼 불빛들
甲午年 東學碑들 沙鉢通文 돌리던 그 벌판에
잔혹한 어둠 속에
불빛 아래
노동이 비로소 꿈이 되는 것을 보라
내일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세상 똑부러지게 살다 가야겠다고
그리고 내일까지는 기다리며 있겠다고
살아 꽃 피며 수군거리는]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추상적 역사 의식을 중심으로 시인 자신의 삶을 상승시키고 있다면 이 시는 그와 반대로 시인 자신의 삶 속에 역사를 담아 내는, 다시 말해 강 속에서 역사를 포착하는 시다. 나는 이 시가 <서울로 가는 전봉준>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그의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시란 근본적으로 개별자 속에 숨어 있는 보편자의 직관적 발견이요, 현상 속에서 발현되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만경강 유역”의 집집마다 빛나는 불빛들 속에 “노동이 비로소 꿈이 되는” 이치가 담겨 있음을 발견한다는 것, 이것은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서의 깨달음에 비해 더 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 이유로 인해 나는 안도현 시의 높은 가능성이 <만경 평야의 먼 불빛들> 속에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자기 삶 속에서 자기와 가족애적인 사랑으로 결합된 사람들이 삶 속에서 “꿈”을 발견하는 ‘희망의 원리’. 바로 이것에 안도현이 자기 시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또 하나의 불빛을 <외롭고> 속에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먼 불빛이며, 일상 속에 침윤되고 있는 불빛이다.
[들녘 끝으로 불빛들이
일렬 횡대로 줄지어 서 있는 만경평야
이 세상 개울물을 잠방잠방 맨처음 건너는
아이들 같구나
너희도 저녁밥 먹으러 가느냐
날 추운데 쉬운 일이 아니다 결코
저 스스로 몸에다 불을 켠다는 것
그리하여 남에게 먼 불빛이 된다는 것은
나는 오늘 하루 밥값을 했는가
못했는가 생각할수록 어두워지는구나]
<먼 불빛>이다. 이 시에 이르면 삶 속에서 일상 속에서 희망을 직관하고, 또한 이를 통해 현실적 삶의 고통을 감내하는 안도현식 상상력의 힘은 왜소화된다. 물론 이 시에서도 그 특유의 진정성은 아직 남아 있다. 이 체험에의 진실성으로 말미암아 <외롭고> 전체는 희망의 완전한 상실로부터 구제되어 있으며, 감동을 간직한다.
그러나 “저 스스로 몸에다 불을 켠다는 것/그리하여 남에게 먼 불빛이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고, “나는 오늘 하루 밥값을 했는가/못했는가 생각할수록 어두워지는구나”라고 탄식하는 걸 보면서 나는 그의 체험적 진실성이 지닌 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에게 불빛 혹은 별빛은 항상 희망의 표지였다. <외롭고>에서도 그러한 성격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불빛 혹은 별빛과 그와의 거리는 <그대에게>에서 <외롭고>로 오면서 훨씬 더 멀어져버렸다. 그 이유는 일단 90년을 전후로 한 시대적 격변이 그의 견디기를 압도할 만큼의 심한 피로를 가져다주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외롭고>에 오면 그의 삶이 구체적인 생활의 의미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 동시에 그의 삶이 그러한 생활에 묻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롭고> 전체는 버티기에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모닥불>에서의 <모닥불>, <성묘>, <폭풍우를 기다리며> 등이 간직하고 있던 ‘희망의 원리’를 대부분 상실해 버렸다. 그 빈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 삶 아닌 생활의 힘겨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낼 것이 있다는 마지막 저항의 노력 등이다. <나에게 보내는 노래>, <나무> 등은 절박한 견딤 및 버팀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다리는 기차는 오지 않았지만
대합실을 이대로 비워둘 수는 없다
최대한 버티는 게 나무의 교육관이다.
낮은 곳을 내려다 볼 줄 아는 것,
가는 데까지 가 보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온 몸으로 가르쳐 주며
나무는 버틴다.]
그에게 지금의 세상은 “숨을 헐떡이다가 방금 멈춰 선 증기기관차”(<겨울 밤에 시쓰기>) 같기도 하고, “팍팍하다 못해 삶이 더는 앞으로 나아갈 것 같지 않은”(<집>) 곳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 마치 최후의 저항이라도 하듯 견디고 버티고자 한다. 그러나 그 열망은 크되 그 논리는 빈약하며, 따라서 견딤과 버팀은 일종의 포즈, 즉 희망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견딤과 버팀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의 시가 자꾸만 길어지는 것은 바로 이 비참한 상황 때문이다.
이 시집에 나오는 일련의 이야기시들은 명시적으로는 백석의 영향 때문이지만 보다 은밀하게는 상실한 ‘희망의 원리’를 지키려는 역설적 사투(社鬪), 새로운 ‘희망의 원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안간힘 때문이다. 하지만 시란 원래 도달하기까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도달한 지점에서 시작하는 것, 도달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시는 자꾸만 길어질 수밖에 없지만, 이것은 그의 시가 어떤 새로운 경지에 이미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 많은 평자들이 그의 긴 시에서보다 짧은 시에서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명징한 세계를 발견하는 것인가. 단형 서정시에서 그의 재능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은 그의 긴 시들이 도달한 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 착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외롭고>가 나쁜 시집이라는 말은 아니다. <해와 달>처럼 몇몇 순정한 시들 외에도 그는 반성적 시선의 확보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보여준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이다. 이 간명한 시가 보여주는 반성의 미학을 이 시집은 <연탄 한 장> <반쯤 깨진 연탄> <튀밥에 대하여> <겨울 밤에 시쓰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튀밥에 대하여>에서 그가, “삶이 가르쳐 준 길을 따라 제대로/나는 가고 있는지” “순식간에 뒤집히는 삶을 기다려오지는 않았는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때, 그것은 80년대를 통해 민중문학을 했던 모든 사람이 지금 던지고 있는 자성의 질문이다. 이 자석은 <집>등에서 그가 백석의 시풍을 계승하면서 거둔 성과보다 오히려 소중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성찰이 존재하는 한 80년대 민중문학은 자신의 존립을 전적으로 폐지할 어떤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 이후에서부터 나는 서서히 불안해진다. 왜냐하면 내게는, 그의 그러한 반성이 웬지, 그가 이전에 지니고 있던 삶과 역사와의 긴장을 위한 노력으로부터 솟아난 것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불순한 요소로부터, 즉 삶을 침윤시키는 생활로부터, 생활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에 대한 못마땅함, 당황스러움으로부터 흘러나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이 못마땅함과 당황스러움이 시인을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떠밀어 올려주는 치열한 위기 의식인지 아닌지에 대해 확신하고 싶지는 않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외롭고> 이후에, 삶을 침윤시키고 있는 생활에 대한 성찰을 수행하면서 생활로부터의 탈피를 이루고 싶어한다. 그가 잠자리를 보고 화암사를 찾아가는 과정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또다시 나는 그가 생활로부터 떠나면서 삶으로부터까지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그의 불행의 참된 시작, 일찍 늙어버림을 의미한다. 나는 그런 상황의 도래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의 가치를 알고, 또 그렇게 되고자 하는 그를 믿고 싶고, 그가 그런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서정과 동심의 풍경> - 이상숙 -
안도현 시의 매력은 맑고 고운 서정과 탁월한 이미지 구사, 그리고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동심(童心)어린 착상일 것이다. 여러 권의 시집을 통해 그의 시는 서정과 이미지를 단련하면서도 동심을 잃지 않는 생래의 시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의 미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번 시집에서 특징적인 것은 세련된 의인법, 활유법의 구사이다. 다음의 시는, 백석의 <入院ㅡ西行詩抄 3>을 떠올리게 하는 시 <생활>과 함께 <南新義州 柳洞朴時逢方>의 어법을 연상시켜 안도현과 백석의 관계를 가늠하게 하는 <바닷가 우체국>이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중략)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 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바닷가 우체국’ 부분 -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는 우체국을 바라보며, 세월과 사랑과 시와 길에 대한 상상력을 펴보이는 이 시는 더없이 아름답다. 바닷가의 고요함과 우체부나 편지가 함축하는 아득한 그리움과 동심은 장단을 바꾸어가며 자연스러운 독백과 유연한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하릴없이 바닷가 여관방에서 뒹굴며, 우체부의 자전거를 따라 모이고 흩어지며, 산골짜기, 해변의 벼랑, 먼 바다까지 뛰어넘는 세상의 모든 길을 추억하고, 파도 소리 그려진 우표를 보낼 곳 정해지지 않았어도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는' 무심의 세월 속에 늙어가고 싶다는 무장무애의 나른한 풍경은 우리 시의 매력적인 한 장이라 할 것이다. 우체국을 무료하고 게으른 짐승으로 형상화한 그의 세련된 의인, 활유는 여러 시편에서 확인된다. 애
<오래된 우물>에서 시인은 마당에 있던 우물을 막아버린 날 밤, ‘그리하여/우물은 죽었다’고 ‘한때 찰박찰박 두레박이 내려올 때마다/넘치도록 젖을 짜주던 저 우물은/이 집의 어머니’였을지도 ‘별똥별이 지는 밤하늘을 밤새도록 올려다보다가/더러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였을/저 우물은/이 집의 눈동자였는지 모른다’고 하고, <모과나무>에서는 갈아입을 팬티도 없이 비를 맞는 모과나무가 ‘그가 가늘디가는 가지 끝으로/푸른 모과 몇 개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끝까지, 바로 그것, 그 푸른 것만 아니었다면/그도 벌써 처마 밑으로 뛰어들어왔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시집 <바닷가 우체국> 전편에 고루 나타나는 의인과 활유법은, 살아있거나 살아있지 않거나 간에 모든 사물들은 ‘나처럼 배고프고 아프고 생각하고 느낀다’고 믿는 아이들의 맹목적인 범신론에서 출발한다.
따라오지 마라 했는데도/끝가지 따라오는/요놈, 꽃다지/또, 꽃다지 - <소풍길> 전문
빗방울하고 어울리고 싶어요/깨금발로 깨금발로 놀고 싶어요/세상의 어깨도 통통 두드려주고 싶어요 - <낙숫물> 전문
밤 깊었는데,//가기 싫은 심부름 가는 듯,//깜박, 깜박 - <반딧불> 전문
귀뚜라미야, 한밤내 생떼쓰지 마라/일주일만 기다리면 수업료 준대도 그러느냐 - <귀뚜라미> 전문
무서리 내린 새벽/까치 한 마리 공중에 뜨네/저도 늦가을 발이 시린가 보네 - <늦가을> 전문
위의 시들은, 잘 가꾸어온 맑은 시심에 감각적인 이미지와 순간적인 풍경의 화사함을 잡아내는 재치로 씌어진 짧은 시편들이다. 소풍길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다지나, 톡톡 튀어오르는 낙숫물, 신발도 양말도 없이 맨발로 겨울 가까운 새벽을 나는 까치의 모습은 모두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보인다. 아이들의 마음과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가 구사하는 활유와 의인은 화법의 묘(妙)를 얻고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위의 시들을 포함한 또 다른 몇 편의 짧은 시들, <모과꽃>, <겨울 편지>, <봄이 올 때까지는>, <탱자꽃>, <가을>, <山竹>, <무진장>, <訃音> 등등은 집중되는 이미지에 걸맞는 강렬한 의미까지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간결한 시행의 미덕은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울림이 있는 사색과 감동의 강렬함을 갖출 때 더욱 돋보일 것이다.
장꾼들이/점심때 좌판 옆에/둘러앉아 밥을 먹으니/그 주변이 둥그렇고/따뜻합니다 - <장날> 전문
화려할 것 없는 인생이지만 생기있게 살아가는 장꾼들이, 그들의 반나절의 생명력과 고단한 삶의 열기가 되어줄 점심밥을 먹는 장날, 장터 풍경. 서민이나 노동자의 둥그런 유대를 운운할 것도 없이 이 시는 그대로 따뜻한 온기와 속깊은 공감을 지니고 있다. 그 온기와 공감은 온전히 시인의 시선과 마음의 공고한 깊이에서 연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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