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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방법/ 서정윤
내 사랑은 잠시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순간의 화려한 눈부심 뒤에
긴 어둠, 많은 꿈을 견딜지라도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우리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불꽃의 흔적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이다
- 시집 <따옴표 속에(2005,문학수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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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쯤 여기 시하늘에 당도하기 전 우연히 알게 된 한 여성시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서정윤 시인과는 종씨에 갑장에다가 가끔 전화를 주고받을 정도의 막역한 사이라고. 나는 내심 그렇게 말하는 그 분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는 시인이라고 교과서에 나왔던 시인 말고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 손에 꼽히는 시인을 잘 알고 있다니 놀라웠고 신기했다. 한국 현대시사에서 가장 대중들로 부터 사랑받는 시가 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서시 그 다음으로 한때 자리매김 된바 있는 '홀로서기'의 서정윤 시인을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잘 알고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 은근히 설레는 일이었다. 그런 시인을 잘 아는 시인을 내가 안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당시 기형도는 몰라도 서정윤은 알았고, 서정윤은 알아도 송재학, 엄원태, 장옥관을 아는 것은 어림없을 때였다. 이성복은 어렴풋이 이름만 들었고 황동규는 누군가로 부터 선물로 받은 그의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이 집 책장에 꽂혀있어 이름을 기억하는 정도였다. 그때까지 나의 빈약한 문학적 교양이 그런대로 유지된 것은 시가 아니라 순전히 재미로 읽었던 당시의 소설들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이청준과 최인훈, 이문열과 황석영 등의 소설은 그런대로 재미 이상을 주었던 것 같다.
아무튼 시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인 내게도 누가 주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홀로서기'라는 시집이 한 권 있긴 있었다. 지금껏 시집 판매만으로 경이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시인의 시집이라 나도 그 수백만 독자 가운데 한 사람인지라 별로 대수로울 건 없겠다. 그런 그였는데, 한참 뒤 문학동네를 기웃거리면서 보니 문단에서의 그의 입지는 생각보다 그리 넓어보이진 않았다. 평론가들은 대체로 그의 시를 외면했고, 시인 역시 그들의 입맛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했다. 소위 민중시와 참여시 이외의 장르로는 명함을 내밀기 힘든 시절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어쨋거나 말랑말랑한 감성에 의존하는 설탕 같은 시일뿐이라는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홀로서기'의 감수성에 영혼이 묶인 독자가 무려 300만이나 되었다. 이런 현상에 대한 평단의 호의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이숭원 평론가는 '서정윤 시인이 의도적으로 쉽게 쓴 것'이라고 단언했다. “신비평과 러시아 구조주의 문학까지 정통한 그가 시를 몰라서가 아니라 시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한 작가 나름의 고민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게 의도적이었는지 우연히 그런 결과를 낳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의 폭발적인 대중적 수요는 비평가나 대중매체의 광고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독자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났으며, 개인적 그리움의 서정을 기초로 한 사랑시로 독자들의 습자지 같은 감성을 자극해 스스로 얻은 '홀로서기'였던 점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홀로서기와 그 이후의 서정윤 시에 대한 일반의 평가는 매우 다양하고 그 편차도 크다.
그 시어와 사유의 평이한 범속성은 문학성과 대중성의 경계 혹은 그 언저리에서 때로는 대중성에 더 기울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문학적 성취에 접근한 작품도 더러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실제로 어떤 작품은 시인이 의도적으로(?) 문학성에 초점을 맞추어 작심하고 쓴 작품이 아닐까 여겨지는 시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문단은 여전히 냉담한 편이었고 독자들로서는 향상된 주목을 끌기는 커녕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혁혁한 변모를 기대하기 보다는 차라리 하던대로 하고 가던 길을 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홀로서기'를 기억하는 독자들로서는 대체로 시인의 쉽고, 다정하고, 낮은 목소리로 풀어내는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출판 환경에서 책을 내는 출판사 측의 요구 컨셉 역시 독자의 기대 수준, 그 눈높이와 같다고 본다면 시인 역시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일 게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독자의 그런 기대에 지금까지 얼마나 충실하게 부응했느냐다.
시집 '따옴표 속에'서 시인 스스로도 '사랑이 변하고 또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는 것. 사랑은 점차 변해가면서 그것이 성숙한 모습을 갖춘다는 것을 알기까지 참 많은 시행착오를겪었다'고 고백했듯이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쉽고 친근한 언어로 사랑의 다양한 모습들을 그려 보이며 우리 삶 곳곳에 숨어 있는 사소한 기쁨들을 일깨워내는 시를 두리번거리지 않고 써갔더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시처럼 '잠시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같은 '순간의 화려한 눈부심'에 대한 기억과 견딤으로 '우리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라야 하며, '불꽃의 흔적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이' 그의 시쓰기 방식이 되어야 옳았다. 어정쩡하게 평단과의 화해를 모색하기 보다는 '홀로서기'가 채굴된 갱내로 더 홀연히 깊게 들어가 그만의 금맥을 캐내는 것에 매진하는 확실한 차별화가 훨씬 유효했으리라. 이를테면 독자를 얻음으로써 문단에서 축출될 지언정 류시화처럼 살아남는 것이 그가 선점한 입지를 넓히는 길인 동시에 전략이며, 그를 사랑한 독자들에 대한 책무이고 '사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AC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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