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희니까 흰제비꽃일까?
어제 조천읍 민오름 터진굼부리로 오르는 중간에서 만난 녀석들.
갑자기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는 이 꽃의 출현에 어리벙벙해졌다.
처음에는 남산제비인 줄 알았는데 다가서 보니
이렇게 보랏빛 조금도 섞이지 않은 녀석들이 나무 그늘에서
의젓하게 무리 지어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
그 무리는 간헐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지속하며
거의 정상까지 분포되어 있었다.
잎사귀가 길쭉하지 않고 이런 유형을 보이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다른 이름을 가졌을 성싶다.
♧ 흰제비꽃 소곡 - 복효근
- 소양 누님께
봄날은
흰제비꽃 시선 하나에도
발부리가 걸려 오래오래 아프다
잊혀져 불려지지 않은 이름들이
흰제비꽃으로 피었나
제비꽃은 지가 꽃피는 게 일이라서 피는 게 아니라
지난 겨울 긴 긴 울음이 잦아진 다음
살지 않으면 또 어쩌랴 싶어
얼굴 씻고 양지쪽에 나섰는 것이다
그렇듯 사람아
어디에든 살아서
살아서 헝클어진 머리카락 추스려 묶고
화장이라도 좀 고치고 양지쪽에 나서보렴
돌담 아래 쭈그리고 앉아 하릴없이
잊혀진 내가 잊혀진 흰제비꽃 이름 챙겨주지 않는다면
어디쯤은 있을 내 사람의 눈물도 하염없겠다
♧ 흰제비꽃 전설 - 최범영
강남 갔던 제비 옛 집에 돌아오니
살던 집은 뚜룩제비가 차지
옛 정마저 되찾을 수 없어
울다울다가 꽃이 되어
삼월 삼짇날이면
흰 꽃으로 피게 되었다더라
향기롭고 우아함에
악다구니 같이 이벌 저벌 죄 모여들어
숨을 쉬고 살 수 없게 되자
나도 배신을 할 수 있다
날 너무 괴롭히지 마라
보랏빛 제비꽃이 되었더란다
보랏빛 우아함에 반한 나나니벌 하나
그 꽃만 보며 야위고 야위어 죽으며
제비꽃과 한 몸이 되었다더라
봄이면 피어 눈물만 짓는 제비꽃은
나나니벌 같은 깍지 안에
눈물 같은 씨앗을 맺는다더라
♧ 가수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 - 권경업
- 풀꽃이라 불리는 흰제비꽃을 위해
풀꽃 하나도 못 견디어
떠나버린 마른 가슴
깡술 쏟아 붓는다 해서
꽃이 피겠습니까마는
한 열흘 밤낮 술만 퍼부었습니다.
서해로 설악으로 떠돌며
남도(南道) 어디, 혹
다른 꽃 소식이라도 접하면 나을까 싶어
잔설(殘雪) 사이로 넘은 노고단
천은사 노오란 산수유도
내게는 부황 든 듯했고
풀린 강물 반짝이는 섬진강변
다압 마을 골짜기 가득한 매화도
한겨울 찬 눈(雪) 같았습니다.
부질없는 줄 알지만
내 안에 꽃 필 때까지가 아니고
저 매화 다 질 때까지만 이라도
절망 같은 술로 견뎌보려 합니다.
벌써, 꽃 진 자리 향기 남기는
청매화 흰 꽃잎 하나둘, 저녁 어스름의
내 등뒤로 스러지고 있습니다.
♧ 제비꽃 편지 - 안도현
제비꽃이 하도 예쁘게 피었기에
화분에 담아 한번 키워보려고 했지요
뿌리가 아프지 않게 조심조심 삽으로 떠다가
물도 듬뿍 주고 창틀에 놓았지요
그 가는 허리로 버티기 힘들었을까요
세상이 무거워서요
한 시간도 못되어 시드는 것이었지요
나는 금세 실망하고 말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것도 없었어요
시들 때는 시들 줄 알아야 꽃인 것이지요
그래서
좋다
시들어라, 하고 그대로 두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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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hel Sardou - La Maladie D,Amour(사랑이라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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