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로차 / 황동규 -서산 부석사에서 만난 성전 스님에게
지난겨울 찬 바람이 서산 서남 들녘과 바다를 밀물처럼 하얗게 덮을 때 바람의 이랑 내려다뵈는 조비산(鳥飛山) 허리에서 우연히 만나 부드러운 죽로차 마시며 담소한 일이 벌써 반년이군요. 선물로 주신차. 물 끓이고 70도 언저리로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기다리는 시간이 무언지 늘 새로 느끼게 하는 그 까다로운 차를, 이제 집 밖에서 그리워하게끔 되었습니다. 차의 부드러움이 모르는 새 속마음을 얼마나 정교하게 짚어내기도 하는지 한 마리 조그만 개미가 되어 두 더듬이 비비며 찻잔 앞을 긴 적도 두어 번 됩니다. 우연도 인연이라는 불가(佛家)의 말은 잠시 접읍시다. 우연만으로도 모처럼 환합니다. 오늘은 개미 하나가 식은 죽로 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건져주었습니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전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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